최근 중동에서 발생한 이란 전쟁의 여파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지난 토요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 이후 페르시아만이 사실상 폐쇄되고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이 가동을 멈췄다. 이 충격으로 유럽 가스 가격은 2023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미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 경쟁국에 비해 높은 에너지 비용으로 고통받던 유럽 산업계는 이제 존립의 기로에 섰다. 유럽 정책 입안자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으며, 치솟는 에너지를 잡기 위한 해법을 내놓으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고 정치적으로 매우 위태롭다.
현재 유럽 내에서 논의되는 해결책들은 기후 정책의 폐지부터 전력 가격 결정 구조의 근본적 개편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길이 없다. 정치적으로 폭발성이 강하거나 실현 불가능하며, 혹은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 어려운 대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 유럽 관료들을 뜨겁게 달굴 네 가지 쟁점과 그 이면의 갈등을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전력 가격 결정 체계의 모순과 개편 논란
유럽 에너지 가격 논란의 중심에는 전력 가격이 결정되는 '한계 가격 결정 방식(Merit Order)'이 있다. 이 시스템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 투입되는 발전소 중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발전소의 가격이 전체 전력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다. 안타깝게도 그 마지막 단계를 차지하는 것이 대부분 가스 발전소다. 결과적으로 바람이나 햇빛처럼 연료비가 들지 않는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저렴한 전기도 비싼 가스 가격에 맞춰 판매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2022년 에너지 위기 당시에도 논의가 폭발했지만 결론 없이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오는 3월 19~20일 정상회담에서 이를 주요 의제로 다루겠다고 약속하며 다시 불이 붙었다. 철강 분야 로비 단체인 유로페르(Eurofer) 등 중화석 산업계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화석 연료 가격의 폭등이 청정 에너지 가격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금의 구조가 더 이상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발전 업계의 입장은 정반대다. 업계 단체인 유렉트릭(Eurelectric)은 현재의 방식이 비용 효율적인 배분과 투명한 가격 신호, 효율적인 투자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메커니즘이라며 개편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핀란드와 프랑스를 포함한 7개국 에너지 장관들 역시 현재의 모델을 대체할 만족스러운 대안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번에도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
기후 정책 후퇴와 탄소배출권 거래제 완화 압박
에너지 비용을 낮추기 위한 또 다른 카드는 EU의 핵심 기후 정책인 탄소배출권 거래제(ETS)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기업들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줄여줌으로써 전력 회사와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논리다. 2005년에 도입된 ETS는 기업들이 배출 허용량을 구매하도록 강제하여 재생에너지와 저탄소 공정으로의 전환을 유도해 온 EU 기후 정책의 상징과도 같다.
하지만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유럽의 제조 강국인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두 나라는 여전히 가스 의존도가 높으며, 유럽 전역에 퍼진 '그린 아젠다'에 대한 불만을 지렛대 삼아 정책 후퇴를 꾀하고 있다. 만약 기후 정책의 근간인 ETS가 흔들린다면 이는 유럽의 환경적 리더십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 자명하다. 환경을 지키느냐 경제적 생존을 택하느냐를 두고 정치적 갈등은 폭발 직전이다.
러시아 가스 수입 재개라는 금기어의 등장
가장 즉각적으로 에너지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재개하는 것이다. 이란 전쟁으로 인해 가스 수입 경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러시아 가스는 가장 강력한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옵션이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지켜온 도덕적, 정치적 선을 넘는 행위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침략국에 다시 손을 내미는 것은 유럽 연합의 결속을 해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현재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하는 나라가 없지만, 산업계의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이 '금기'가 공론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U 관료들은 이란 전쟁 전부터 추진해 온 에너지 공급처 다변화 노력이 이번 가격 폭등을 막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혹하며,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유럽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미래를 담보로 한 선택과 산업 경쟁력의 위기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단순히 일시적인 가격 상승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내 저렴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높은 에너지 비용으로 인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전력 가격 체계를 고치지 못하고 기후 정책을 포기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러시아에 다시 머리를 숙일 수도 없는 삼중고에 빠진 셈이다.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모든 대책이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충돌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되어도 가스 가격에 연동되는 전력 가격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럽 시민과 기업들은 중동의 정세 변화에 계속해서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번 주 열릴 논의들이 단순히 갈등 확인에 그칠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타협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에너지 자립과 경제적 생존 사이에서 유럽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시사 >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 서방의 강제노동 의혹 제기와 글로벌 통상 질서의 급격한 변화 분석 (0) | 2026.03.18 |
|---|---|
| 중동의 거대한 도박과 미국의 암살 작전, 흔들리는 국제 질서와 에너지 안보의 위기 (0) | 2026.03.13 |
| MS의 앤스로픽 지지 선언과 펜타곤의 AI 블랙리스트가 불러온 거대한 파장 (0) | 2026.03.11 |
| 핀란드 핵무기 봉인 해제와 북유럽 안보 지형의 격변 (0) | 2026.03.10 |
| 미·이 군사 충돌이 글로벌 자본시장과 공급망에 미치는 나비효과 분석 (0) | 2026.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