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공격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암살 사건 이후, 중동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었다. 국제 유가는 18개월 만에 최고치인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으며, 공급 중단 공포는 가시지 않고 있다.
전 세계의 시선은 미국 셰일오일 업계로 향한다. 부족한 공급분을 미국이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현장의 목소리는 냉담하다. 셰일오일 생산자들이 당장 증산에 나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미국 셰일오일 업계가 즉각적인 증산에 선을 긋는 이유
미국 셰일오일 업계의 거물인 스콧 셰필드는 생산량을 빠르게 늘려 현재의 오일 공급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단언했다.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 위해서는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셰일 기업들은 지난 1년 동안 저유가 시대를 지나오며 지출을 줄이고 시추 장비를 멈췄으며 인력을 감축했다.
단순히 유가가 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버튼을 누르듯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기업들은 현재의 고유가가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장기간 지속될 것인지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시추 프로그램을 시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에너지 인프라 파괴의 공포
현재 중동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은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하며 인근 아랍 국가들의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고 있다. 이미 이라크의 대형 유전과 카타르의 거대한 가스 수출 시설 일부가 가동을 멈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유조선을 호송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불분명하다.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공급 중단이 지속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곧바로 연료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글로벌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낙관과 셰일오일의 현실적인 한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 셰일오일이 단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메울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시추는 끝났지만 생산을 시작하지 않은 '닥(DUC)' 우물들을 활용하면 하반기에 하루 40만 배럴의 추가 생산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중동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되는 양은 하루 2,000만 배럴에 달한다. 미국이 추가로 내놓을 수 있는 양은 이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심지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현재 사상 최고치인 하루 1,360만 배럴 수준의 미국 생산량이 올해 오히려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 흐름을 되돌리는 데는 고유가라는 당근이 있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중동 위기의 뜻밖의 승자, 러시아의 귀환
역설적이게도 이번 중동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로 구매자를 찾기 힘들었던 러시아산 석유가 이제는 '귀한 몸' 대접을 받고 있다. 미국은 급격한 유가 상승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 가했던 일부 제재와 관세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인도, 일본, 한국 등 중동 에너지에 의존하던 아시아 국가들은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다시 러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중동의 주요 경쟁자들이 전쟁으로 인해 수출길이 막힌 사이, 러시아는 더 높은 가격에 더 많은 석유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길 기회를 잡았다.
유럽의 에너지 안보 딜레마와 러시아산 의존도
유럽은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 몇 년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과 중동으로 수입선을 돌렸지만, 이제 중동마저 전쟁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카타르의 LNG 생산 시설이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가동을 멈추고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면서 유럽의 가스 가격은 다시 치솟고 있다.
유럽 내부에서는 다시 러시아와 에너지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러시아로 돌아가는 것은 커다란 실수라고 경고했지만, 당장 닥친 에너지 위기 앞에서 유럽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결론: 에너지 패권의 변화와 장기적인 고유가 대비
미국 셰일오일이 즉각적인 구원투수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유가 상승 압력이 당분간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러시아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은 강화될 것이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수치는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기업과 개인은 이제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가정하고 자산 운용과 비용 관리 전략을 짜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