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정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허한 행보와 이에 대응하려는 유럽연합(EU)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요약된다. 폴리티코(POLITICO)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유럽 각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문제에서 유럽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 우크라이나 지원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는 단순히 외교적 수사 수준을 넘어 실제 우크라이나의 존망이 걸린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유럽 리더들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영구적으로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란에 대한 제한적 지원이라는 고육지책을 내놓으며 트럼프를 달래려 애쓰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직후 "이란에서의 전쟁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돌려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중동에서 터진 불꽃이 유럽의 안보 지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자신의 SNS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유럽을 향해 독설을 퍼붓고 있다. 그는 "나토(NATO)는 종이호랑이다!"라고 비난하며, 세계 석유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란에 맞서 유럽이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을 두고 "겁쟁이들"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태도는 미국이 나토와 우크라이나 분쟁에 계속 개입할지 여부를 중동 갈등과 직접적으로 연계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동 전쟁이 갉아먹는 우크라이나의 방어력
유럽 외교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중동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가야 할 군사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과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미사일 및 방공 시스템 탄약이 중동으로 우선 배정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파상공세를 막아내야 하는 키이우 입장에서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미사일은 캔디처럼 무한정 쏟아지는 자원이 아니다. 한정된 비축분이 중동의 불을 끄는 데 사용될수록 우크라이나의 하늘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 협상단은 트럼프의 측근인 스티브 윗코프와 자레드 쿠슈너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쿠슈너는 이번 회담을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지만, 정작 러시아와의 협상이 언제 재개될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았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문제를 중동 전략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유럽 입장에서는 미국이 중동에서의 보복 조치로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Made in Europe 계획과 한미일 동맹의 균열
안보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및 산업 정책에서도 미국과 유럽의 충돌은 격화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 경제를 부흥시키고 산업 쇠퇴를 막기 위한 '산업 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을 준비 중이다. 이른바 'Made in Europe' 전략으로 불리는 이 계획은 자동차부터 제조업 전반에 걸쳐 현지 부품 사용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은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인 방위 산업 기반을 다지려 한다.
하지만 앤드루 퍼저 주유럽 미국 대사는 블룸버그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 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 규칙이 채택된다면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동맹국의 방위 노력을 훼손하고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항전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퍼저 대사는 이 규칙이 미국과 EU가 지난해 체결한 무역 협정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며, 미국의 국방 산업 기반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고립주의 트럼프와 자립하려는 유럽의 충돌
유럽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 수십조 원의 군사 및 산업 지출을 늘리면서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현지 제조 능력을 강화하고 싶지만, 그것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 현재의 안보 체제를 무너뜨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이 스스로의 방위를 더 많이 책임지라고 압박하면서도, 막상 유럽이 독자적인 국방 산업 체계를 갖추려 하면 이를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제동을 건다.
여기에 영국까지 가세해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을 설득하며 유럽의 폐쇄적인 공공 조달 입찰 조항에 반대하고 있다. 유럽 내부에서도 'Made in Europe'의 수위를 어디까지 조절할지를 두고 회원국 간의 갈등이 치열하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될수록 유럽은 더욱 거세게 자립을 모색하게 되고, 이는 다시 미국과의 마찰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동의 불꽃
결국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키이우나 브뤼셀이 아닌 호르무즈 해협과 테헤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동 협력의 대가로 설정했으며, 유럽이 중동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먹잇감으로 던져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렉산더 스텁 핀란드 대통령은 "유럽과 미국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나는 그중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을 구하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유럽 리더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트럼프의 중동 전쟁에 발을 담그며 우크라이나를 위한 미국의 지원을 연장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존 노선을 걸을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유럽이 지불해야 할 대가는 가혹할 것이다. 트럼프의 '기억하겠다'는 경고는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온 대서양 동맹 체제가 근본적으로 붕괴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안보 지형은 알고리즘과 정밀 타격의 시대를 넘어, 자국 우선주의라는 지독한 현실 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하늘을 지키는 미사일이 중동의 사막으로 향하는 순간, 유럽의 안보는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질 것이다. 트럼프라는 거대한 변수 앞에서 유럽이 내놓을 다음 카드가 무엇일지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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