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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경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유럽의 에너지 쇼크 글로벌 공급망 붕괴의 서막

 

중동에서 발생한 이란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전 세계 에너지 흐름이 차단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유럽은 제조업 마비, 항공기 운항 중단, 식료품 가격 폭등, 대출 금리 상승,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재발이라는 유례없는 공급 쇼크에 직면해 있다.

 

페르시아만에서 화석 연료를 싣고 출발한 마지막 유조선들이 유럽 항구에 입항하면서, 유럽 지도자들은 이제 곧 닥쳐올 거대한 재앙의 규모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국방장관 귀도 크로세토는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가혹한 현실"이라며 고통을 호소했고,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이번 분쟁의 장기적 영향이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유럽의 에너지 쇼크 글로벌 공급망 붕괴의 서막

 

 

 

세계 경제의 급소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와 20%의 공포

 

전 세계 석유와 천연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급소다. 이란은 테헤란의 허가 없이 통과하는 모든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며 이 좁은 통로를 사실상 봉쇄했다. 과거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전 세계 공급량의 7%가 차단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20%의 차단은 그 파괴력이 차원이 다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연료 부족을 겪는 국가들을 향해 "이제 스스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이미 할 일을 다 했으니 각자 알아서 석유를 구하라는 트럼프의 메시지는 국제 공조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Pic.: ‘The Daily Mail’

 

 

에너지 부족을 넘어 산업 전반으로 번지는 도미노 현상

 

석유와 가스는 단순히 난방이나 운송 연료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산업 공급망 전체를 지탱하는 뿌리와 같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비료 생산 단가를 높여 식량 가격을 폭등시키고, 플라스틱, 화학 제품, 농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로 인해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헬륨과 비료의 원료 수급까지 차단되면서 첨단 산업마저 멈춰 세우고 있다. 과거의 위기들이 특정 에너지원에 국한되었다면, 이번 패닉은 원유, 천연가스, 항공유, 디젤 등 모든 정제 제품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유럽의 오판과 아시아와의 치열한 에너지 확보 전쟁

 

유럽연합(EU) 당국자들은 당초 페르시아만 의존도가 원유 6%, 천연가스 10% 미만이라는 점을 들어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낙관했다. 미국, 노르웨이, 아제르바이잔 등으로 수입원을 다변화했기에 가격 상승만 견디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쟁이 5주 차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기존에 페르시아만 의존도가 80%에 달했던 아시아 국가들이 부족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가격을 제시하며 입찰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유연한 계약을 맺은 상선들은 더 높은 수익을 쫓아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으며, 미국과 나이지리아산 LNG 운반선들조차 이미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요 파괴와 에너지 록다운의 공포가 다가온다

 

에너지 공급 제한의 가장 즉각적인 효과는 이미 주유소 가격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럽의 연료 가격 벤치마크인 'Euro Super 95'는 한 달 만에 약 15% 상승했다. 유럽 정부들이 유류세를 인하하며 버티고 있지만, 새로운 공급원이 나타나지 않는 한 결국 '수요 파괴'라는 고통스러운 도구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 EU 에너지 책임자 단 요르겐센은 각국 정부에 디젤과 항공유 부족을 상쇄하기 위해 운송 수단 이용을 억제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1970년대의 '차 없는 일요일'이나 가솔린 배급제를 연상시키며,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시기 수준의 강력한 '에너지 록다운'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미 독일 루프트한자 그룹은 항공유 위기로 인해 수십 대의 비행기를 지상에 묶어두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제조업의 몰락과 스태그플레이션의 부활

 

에너지 집약 산업인 화학 분야를 시작으로 유럽 제조업의 고통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독일 화학 거물 코베스트로는 물류 경로 변경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비료 생산 비용의 60~80%를 차지하는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전 세계 농산물 시장에 연쇄적인 가격 인상을 불러오고 있다. 이는 결국 기업의 도산과 가계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지며, 정체된 경제 성장 속에서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망령을 불러내고 있다. 유럽 경제 집행위원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1970년대처럼 경제를 황폐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세대의 경제 지형을 바꿀 장기적인 상처

 

국제에너지기구(IEA) 수장 비롤은 설령 전쟁이 오늘 당장 끝난다고 해도 경제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데는 최소 1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르무즈 해협 주변의 에너지 인프라가 이미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파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부터 유럽은 본격적인 고통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며, 이는 며칠 내로 닥칠 수도 있다. 유럽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몇 달이 아니라 몇 주에 불과하다. 이번 위기는 단순히 지나가는 소동이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 지형을 한 세대 동안 완전히 재편할 정도로 깊고 긴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