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경제

굿바이 할리우드? 미국 영상 산업의 공동화 현상과 꿈의 공장의 몰락 위기

 

한 세기 동안 전 세계 대중문화의 심장부로 군림해 온 할리우드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제작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편수가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 급격히 감소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나마 제작되는 콘텐츠들조차 세제 혜택과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미국 밖으로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ER'의 스타 노아 와일은 이를 두고 "한때 번성했던 산업의 거의 궤멸적인 붕괴"라고 표현했다.

 

화려한 레드카펫 뒤에서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는 할리우드 경제의 실체와 영상 산업의 대전환기를 심층 분석한다.

 

굿바이 할리우드? 미국 영상 산업의 공동화 현상과 꿈의 공장의 몰락 위기

 

 

탈출하는 제작사들: 세제 혜택을 찾아 떠나는 할리우드

 

현재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미국을 떠나고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지역 인센티브와 결합해 제작비의 거의 절반을 환급해 주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헝가리와 같이 인건비와 건설 비용이 저렴한 비영어권 국가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 내에서도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저지, 뉴욕, 조지아 등 더 유리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주로 제작 거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2022년 정점 대비 배우, 목수, 의상 제작자 등 영화 산업 종사자들의 고용이 30%나 급감하는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Pic. publics

 

 

피크 TV 시대의 종언과 월스트리트의 수익성 압박

 

할리우드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또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제작 편수' 자체의 감소에 있다. 2020년대 초반, 넷플릭스와 디즈니+, HBO 맥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구독자 확보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콘텐츠를 쏟아내던 '피크 TV(Peak TV)' 시대를 구가했다. 그러나 2023년 배우와 작가들의 파업이 끝날 무렵, 월스트리트의 요구는 '성장'에서 '수익'으로 급격히 선회했다. 흑자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제작비를 줄이는 것이었고, 이는 곧 전체 제작 편수의 축소로 나타났다. 화려했던 물량 공세의 시대가 가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유튜브와 틱톡 그리고 인공지능이 바꾼 엔터테인먼트 지형

 

엔터테인먼트 소비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도 할리우드를 위협하고 있다. 과거에는 화면을 통해 보는 거의 모든 것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으나, 이제 대중은 여가 시간의 상당 부분을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에서 보낸다. 아마추어나 소규모 제작사가 노조 없이 저비용으로 만든 콘텐츠가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 콘텐츠와 경쟁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의 등장은 제작 효율성을 높여 새로운 붐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제작 현장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기술의 진보가 할리우드의 100년 전통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전철을 밟는 로스앤젤레스의 악몽

 

로스앤젤레스 경제의 근간이었던 영상 산업이 증발하면서 할리우드가 과거 자동차 산업의 쇠퇴를 겪은 디트로이트처럼 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본사는 여전히 이곳에 남겠지만, 실제 제작과 노동은 모두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빈껍데기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비록 제작사들과 노동조합이 연방 정부에 15% 수준의 세제 인센티브 도입을 로비하며 제작 거점의 환류(Repatriation)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미 변해버린 경제적 유인 구조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도 많다. 꿈의 공장이었던 할리우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경제적 이유로 탄생하고 경제적 이유로 떠나는 할리우드

 

역설적이게도 할리우드의 탄생 배경 자체도 경제적 이득이었다. 20세기 초, 미국 영화 제작자들이 동부 뉴욕을 떠나 서부 할리우드를 선택한 이유는 뉴욕보다 세금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모여들었던 영화인들이, 이제는 똑같은 경제적 이유로 할리우드를 떠나고 있다. 100년 전에는 뉴욕을 버렸던 그들이 이제는 할리우드를 버리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만든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할리우드가 다시 한번 자신을 재정의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꿈의 공장'이라는 명칭을 역사책에 넘겨주게 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