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위트(Stephen Witt)라는 작가를 기억하는가. 과거 MP3 포맷이 어떻게 음악 산업을 해체했는지를 다룬 저서 '음악은 어떻게 무료가 되었나'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가 이번에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중심, 엔비디아와 황젠순(젠슨 황)을 정조준했다.
2026년 2월, AI 열풍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위트의 신작 '황젠순: 엔비디아의 심장(원제: Thinking Machine)'은 우리에게 매우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진다. 기술 혁신이 가져오는 파괴적 결과에 대해 정작 기술자들은 얼마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두 명의 황젠순 실무적 경영자에서 기술의 교주로
스티븐 위트는 이 책에서 황젠순의 삶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첫 번째 황젠순은 대만 출신의 이민자로서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성실하고 독한' 경영자다. 9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문제아들이 가득한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매를 맞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소년,
식당 '데니스(Denny's)'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란 속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던 청년이 그 주인공이다. 초기 엔비디아는 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회사였고, 이때의 황젠순은 경쟁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996' 방식의 고강도 노동을 밀어붙이던 전형적인 패도적 CEO였다.
하지만 2013년, 엔비디아의 한 평범한 엔지니어 브라이언 카탄자로(Bryan Cantanzaro)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두 번째 황젠순이 탄생한다. 가죽 자켓을 입고 무대 위에서 AI의 미래를 설파하는 록스타와 같은 모습이다.
카탄자로는 "더 이상 아무도 슈퍼컴퓨터를 사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AI라는 새로운 시장을 제안했고, 황젠순은 이를 '일생일대의 기회'로 포착했다. 이때부터 엔비디아는 게임 속 몬스터를 잡던 칩을 '인공 두뇌'를 만드는 도구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한다.
돈을 쫓는 엔지니어와 기술의 파괴적 속성
흥미로운 점은 AI 혁명을 촉발한 카탄자로의 동기다. 위트의 묘사에 따르면 그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사랑하는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엔지니어였지만, 동시에 일찍 가정을 꾸려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AI에 대한 거창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업을 막고 더 많은 칩을 팔기 위해 AI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MP3를 개발했던 독일 엔지니어들이 기술 자체의 혁신에만 몰두하고 그로 인해 무너질 음악 산업의 생태계에는 무관심했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
황젠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AI를 신성한 초지능으로 보기보다는 자사가 판매하는 하드웨어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금광 앞에서 삽을 파는 공장장에게 중요한 것은 금이 얼마나 나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삽을 사느냐인 것과 같다.
엔비디아는 AI라는 금광 입구에 삽 공장을 차렸고, 전 세계는 엔비디아의 칩 없이는 AI 연구조차 할 수 없는 구조에 갇히게 되었다.
가속과 질주 뒤에 가려진 거대한 청구서
2026년 현재, 엔비디아의 주력 AI 칩인 H200의 가격은 4만 달러에 육박한다. 과거 400달러짜리 그래픽 카드를 팔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다.
황젠순은 가속(Acceleration)을 외치며 끊임없이 하드웨어를 업데이트하고, 무료 소프트웨어인 CUDA를 통해 전 세계 개발자들을 엔비디아 생태계에 묶어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속의 이면에는 엄청난 양의 전력 소모, 자원 낭비, 그리고 해고되는 노동자들과 무너지는 인터넷 생태계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지금의 황젠순은 더 이상 겸손한 이민자 경영자가 아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개인숭배에 가까운 충성을 요구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위트는 황젠순이 하는 말들이 때때로 앞뒤가 맞지 않으며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가 돈을 벌고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일관적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생각하는 기계는 인류의 동료인가 적인가
과거 MP3가 CD를 대체하며 음악가들의 생계를 위협했듯이, 이제 AI라는 '생각하는 기계'는 인간의 두뇌 기능을 대체하려 한다. 기술의 파괴적 경향은 마치 잘 포장된 불꽃과 같아서,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위험성을 깨닫기 어렵다. 황젠순과 엔비디아가 만든 이 거대한 불길은 과연 인류를 따뜻하게 데워줄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인가.
분명한 것은 기술을 만드는 자들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혁신과 이윤뿐이다. 우리가 황젠순의 전설적인 성공담 이면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비용은 결국 기술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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