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어느덧 4주차로 접어들었다.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폭풍 전야를 지나 폭풍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심 에너지 기지인 하르그섬을 공격하고, 이에 맞서 이란이 주변국의 산유 및 정유 시설을 타격 목표로 설정하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은 결국 중동에 지상군을 파병하는 결단을 내렸고, 이 소식에 국제 유가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중동 현지 유가와 미국 내 유가 사이에는 유례없는 거대한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우리 지갑과 글로벌 금융 시장에 어떤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안전자산이라던 황금마저 추락하고 있는지 하나씩 짚어본다.

중동발 인플레이션 공포와 중앙은행들의 매파적 돌변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 세계 금융 시장은 공포에 질려 있다. 글로벌 증시는 4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고, 채권 시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시장 참여자들은 더 이상 연준(Fed)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2년물 국채 수익률은 순식간에 20bp나 치솟았고, 영국은 올해 세 차례나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에 국채 수익률이 38bp 급등했다.
최근 열린 미 연준 회의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준은 일단 금리를 동결했지만, 기조는 매우 매파적이었다. 올해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위원 수가 급격히 줄어든 반면, 성장률과 물가 전망치는 상향 조정되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고용 둔화 위험이 물가 상승 위험보다 크지 않다고 선을 그으며, 금리 인하의 문턱을 높였다. 심지어 정책의 초점을 '인하'에서 '인상 가능성'으로 옮기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 역시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긴축의 고삐를 죄고 있다.

전쟁 중에 왜 금값은 떨어질까 안전자산의 배신 혹은 기회
지정학적 리스크가 터지면 금값이 오르는 것이 역사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 한 주간 금 현물 가격은 10% 이상 폭락했고 은값 역시 16%나 주저앉았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답은 중동 내부의 절박한 사정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이 민간 시설까지 위협하자 중동의 부호들과 패밀리 오피스들은 공포에 질려 자산을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당장 쓸 수 있는 '달러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금까지 내다 팔고 있다.
더욱 결정적인 이유는 산유국들의 재정 상태다. 석유 운송이 막히고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산유국들의 수입이 급감했다. 하지만 전쟁 수행과 사회 복지를 위한 지출은 줄일 수 없기에, 이들은 외환보유고에 쌓아두었던 금을 대거 매각하고 있다. 여기에 금에 몰렸던 레버리지 투기 자금들이 청산되면서 하락 폭을 키웠다. 하지만 필자는 장기적으로 금의 가치를 신뢰한다. 각국 정부의 재정 적자가 심화되고 중앙은행이 결국 국채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금은 중앙은행의 '실책'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단절과 조작된 유가의 진실
세계 에너지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석유 물동량은 전쟁 전 하루 1,930만 배럴에서 현재 70만 배럴로 그야말로 '단절' 수준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두바이 선물 유가는 배럴당 134달러를 기록 중인데, 미국의 WTI 선물 유가는 98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엄청난 격차는 무엇을 의미할까? WTI 가격은 미국인의 표심과 직결되는 민감한 지표다. 미국 정부가 전략 비축유를 대거 방출하며 시장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재무부가 WTI 시장의 거대 마켓메이커로서 가격을 인위적으로 누르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반면 아시아 시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중동유를 주로 수입하던 한국, 중국, 일본 등은 전쟁의 영향이 적은 아프리카산 원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들이 호르무즈 해협 보호를 위해 군함을 보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짜 점심은 없다'며 압박하고 있다. 현재 시장은 전쟁이 한 달 내에 끝날 것이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지만, 미국 해병대의 배치 상황을 보면 트럼프가 하르그섬 점령을 위한 전격적인 지상전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이란 혁무수위대의 보복으로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다.
공급망 위기와 금융 시장의 숨은 뇌관들
유가 급등의 여파는 이제 실물 경제로 번지고 있다. 전기료와 가스비가 치솟으며 서민들의 생활비 위기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K자형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정치적 극단주의를 부추길 위험이 크다. 필자가 더 걱정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공급망 위기'와 '금융 뇌관'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이미 에너지 부족으로 공장 가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한국과 대만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생산 역시 전력과 특수가스 부족으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원유 공급 차질은 결국 화학 원료 부족으로 이어져 산업 전반을 마비시킬 수 있다.
금융 시장에서는 그간 뜨거웠던 AI 관련주와 사모펀드(PE) 대출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데이터 센터 운영 비용을 높여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이다. 특히 사모 대출 상품들은 부실 채권 발생과 대규모 환매 요구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번 주 시장의 눈은 여전히 이란 전장과 유가에 쏠려 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유로존의 소비 심리 데이터도 놓쳐서는 안 될 지표다. 지금은 수익을 쫓기보다 폭풍우가 지나갈 때까지 자산을 지키는 생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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