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일,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공식적이고 전면적으로 시행했다.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가 첫 대상이다. 유럽으로 들어오는 이 제품들에는 이제 ‘탄소 가격’이 붙는다. 명분은 분명하다. 탄소 누출을 막겠다는 것이다. 즉, 유럽 내부의 강한 탄소 규제를 피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CBAM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다. CBAM은 기후 거버넌스를 강제 규칙으로 바꾸는 제도이며, 글로벌 무역 질서와 공급망의 작동 원리를 재편하는 정책이다.
유엔 기후체제에서 오랫동안 유지돼 온 ‘공동이지만 차별화된 책임’과 ‘자발적 감축’이라는 원칙을 사실상 우회하고, 시장 접근권을 통해 감축을 강제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다. 이 지점에서 CBAM은 기후정책이 아니라 무역정책이 된다.

‘탄소관세’의 탄생 배경: 관세가 아닌 국경조정이라는 이름
법적으로 CBAM은 관세가 아니다. WTO 규범상 관세는 명확한 정의를 갖는다. CBAM은 관세 대신 ‘국경조정 메커니즘’이라는 이름을 쓴다. EU 배출권거래제(EU ETS)에서 형성된 탄소 가격을 수입 상품에까지 확장 적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WTO 일반예외조항과 보조금·상계조치 협정을 광범위하게 해석한다.
이 아이디어는 새롭지 않다. 2005년 EU ETS가 출범한 이후, 유럽 내부에서는 “기후 규제가 산업 공동화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반복됐다. 2007년을 전후해 이미 유럽과 미국 일부에서는 탄소 무역장벽 구상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결정적 계기는 2019년 출범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회와 ‘유럽 그린딜’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Fit for 55’ 패키지는, 유럽 산업의 경쟁력 보호 장치를 필요로 했다. 그 해답이 CBAM이었다.
2021년 7월, EU 집행위는 CBAM 입법안을 제출했고, 2년의 정치적 줄다리기 끝에 2023년 5월 규정이 확정됐다. 2023~2025년은 과도기였다. 보고만 하면 됐다. 그러나 2026년부터는 다르다.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2034년 이후에는 사실상의 ‘완전한 탄소관세 체제’로 전환된다.
2025년 개정의 의미: 행정 부담은 줄이고, 비용 부담은 키웠다
EU는 2026년 시행을 앞두고 CBAM 규칙을 다시 손봤다. 2025년 10월 발효된 개정 규정은 표면적으로는 ‘합리화’다. 연간 50만 톤 이하 소규모 수입 면제, 인증서 판매 시점 연기, 기본값(default value)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행정 부담은 수입업자가 덜게 되었지만, 경제적 부담은 생산자에게 더 크게 전가됐다. 기본값은 ‘가장 높은 배출 강도’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이는 투명한 MRV 체계를 갖추지 못한 국가와 기업에 불리하다. 결과적으로 실제 배출량보다 높은 비용을 부담하거나, 고비용의 감축·검증 투자를 강제받게 된다.
EU 내부 분석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CBAM 적용 상품의 90% 이상에서 탄소 비용이 상품 가격의 10%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2028년 이후 자동차, 가전, 철강·알루미늄 기반 하류 제품으로 범위가 확대되면 파급력은 비약적으로 커진다.
CBAM의 진짜 영향: 비용보다 ‘논리’가 바뀐다
CBAM의 핵심은 얼마를 걷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세계 무역의 판단 기준이 바뀐다는 점이다. 이제 국경을 넘는 상품은 가격과 품질뿐 아니라 ‘탄소 내역서’를 제출해야 한다. 기후 정책은 더 이상 COP 회의장의 합의문이 아니라, 세관의 계산식이 된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는 파편화된다. 유엔 기후체제는 자발성과 다자 협상을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CBAM은 이를 일방적 규칙으로 대체한다. 탄소 감축은 인류 공동 목표가 아니라, 시장 접근을 위한 조건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각국은 협력이 아니라 대응 경쟁에 들어간다.
공급망 역시 달라진다. CBAM은 탄소를 외부비용이 아니라 생산비로 내재화한다. 최저임금 국가, 최저원가 국가는 더 이상 최적 입지가 아니다. 에너지 믹스가 깨끗하고 제도가 EU와 호환되는 국가가 유리해진다. 이는 근본적인 산업 재배치 압력을 만든다.
세계의 반응: 반대, 적응, 그리고 모방
CBAM에 대한 국가별 반응은 세 갈래다.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은 WTO를 중심으로 강하게 반대한다. 미국은 WTO 논리보다 보복 관세를 선택했다. 두 번째 그룹은 일본과 한국처럼 제도를 받아들이며 산업 전환의 계기로 삼는 국가들이다. 세 번째는 영국, 호주처럼 자체 탄소국경조정제 도입을 검토하며 규칙 경쟁에 뛰어드는 국가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EU가 스스로 예외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영국, 인도에는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특례가 논의되거나 합의됐다. CBAM이 보편 규칙이 아니라 협상 카드로 변질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제도의 정당성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대목이다.
중국의 입장과 대응: 반대 속의 전략적 현실주의
중국의 공식 입장은 명확하다. CBAM은 단순한 기후 정책이 아니라 보호무역이며, 단독주의적 조치다. 중국은 UNFCCC와 WTO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동시에 현실적 대응도 병행한다.
문제는 단기 비용이 아니다. CBAM의 기본값 설정, 범위 확대, 규칙 외연은 중국의 주력 수출 산업과 직접 충돌한다. 철강·알루미늄은 물론, 향후 자동차와 가전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는 기업 간 격차, 지역 간 부담 불균형, 공급망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전략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외교적으로 반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탄소시장과 MRV 체계를 강화한다. 이는 ‘외부 강제’가 아니라 내부 전환을 위한 준비라는 논리다.
CBAM 이후의 세계: 위기이자 전환점
CBAM은 단발적 제도가 아니다. 이는 향후 글로벌 기후·무역 규칙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다. 탄소를 기준으로 한 무역 질서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기업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방어적으로 끌려가느냐, 아니면 전환의 계기로 삼느냐.
CBAM은 위기다. 동시에 기회다. 탄소 규칙 경쟁을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이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된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다자 거버넌스의 재구성 역시 중요한 과제다. 기후와 무역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 규칙으로 재설계하는 능력이 향후 국제 질서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참고 자료
- record2142(티스토리)
https://record2142.tistory.com/
(CBAM, 유럽 기후정책, 탄소무역 관련 분석 글 다수) - jouleekim(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uleekim
(국제 기후정책, 탄소시장, 무역·환경 연계 분석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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