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뮌헨 안보 회의에서 흘러나온 공기는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과거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굳건한 혈맹이었다면, 이제 유럽 리더들은 미국으로부터의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완화)'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성과 급변하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이 더 이상 워싱턴의 보호막 아래에서만 안심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유럽이 직면한 새로운 충격과 불신의 시작
지난 1년 동안 미국과 유럽 사이에는 수많은 균열이 발생했다. 관세 분쟁부터 그린란드 영토 문제, 우익 정당의 표현의 자유 문제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골은 깊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이 국경 통제에 실패할 경우 '문명적 소멸 civilizational erasure '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고 경고한 점은 유럽 국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과거 '디리스킹 de-risking '이라는 단어는 주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거나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망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이 단어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우방을 대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마르코 루비오의 부드러운 화법과 가려진 진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마르코 루비오 Marco Rubio 미국 국무장관은 1년 전 JD 밴스 부통령이 보여주었던 고압적인 태도보다는 훨씬 외교적인 톤을 유지했다. 그는 미국이 언제나 '유럽의 자녀'일 것이라며 역사적 유대감을 강조하며 유럽인들의 불안감을 달래려 애썼다.
그러나 정작 유럽의 최대 안보 위협인 러시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며, 푸틴을 향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도 내놓지 않았다. 이는 유럽 리더들에게 미국의 실질적인 안보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핵 이니셔티브와 플랜 B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Chancellor Friedrich Merz 총리는 이번 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이 너무 오랫동안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음을 강하게 질책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독일이 프랑스의 핵우산 아래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물론 메르츠 총리는 이 모든 과정이 NATO 및 미국과 조율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이 더 이상 '베를린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냉전 시대 이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던 유럽 자체의 '핵 플랜 B'가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그린란드 논란과 반복되는 불확실성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리센 총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염려하며 긴장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에 주장했던 '그린란드 매입' 의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관측은 덴마크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국 측 관계자들은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단순 임대가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주었으며, 이는 주권 국가인 덴마크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요구들이 반복되면서 유럽 내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차와 나홀로 유럽
유럽 리더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부적절한 합의를 맺는 시나리오다. 체코의 페트르 파벨 Petr Pavel, 대통령은 "너무 이른 평화는 노벨 평화상이 아니라 또 다른 침략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미 종전 이후 러시아와의 에너지 분야 비즈니스 협상을 논의하고 있는 반면, 유럽 국가들은 향후 1~2년의 전쟁 지속을 대비하고 있다. 런던과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현재 상황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위기로 느끼는 것과 달리, 미국 정치권은 이 사태를 그만큼 엄중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간극이다.
루비오 장관의 회의 불참과 멀어지는 워싱턴
결정적으로 마르코 루비오 장관이 우크라이나 관련 유럽 지도자들과의 회의에 마지막 순간 불참한 사건은 유럽의 소외감을 극대화했다. 미 당국은 일정상의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유럽 관리들은 이를 "미친 짓(Insane)"이라 표현하며 워싱턴이 더 이상 유럽과 협력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피터 웰치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유럽인들은 마셜 플랜을 세우고 유럽을 해방시켰던 나라가 이제 러시아에 영합하며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유럽은 싫든 좋든 '나홀로 서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
디리스킹의 종착역과 유럽의 자강론
결국 미국으로부터의 디리스킹은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안보적 결단이 되어가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핵 논의나 우크라이나 독자 지원 방안 등은 모두 미국 없는 유럽의 미래를 상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독자 노선이 강해질수록 유럽의 통합과 자강론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대서양 동맹이라는 오랜 신화가 저물고, 유럽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새로운 냉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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