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맨체스터 근교의 고턴 & 덴턴(Gorton & Denton) 지역에서 치러지는 보궐선거는 현대 영국 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균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동당 앤드루 그윈 의원의 불명예스러운 사퇴로 촉발된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교체를 넘어, 수십 년간 누적된 경제적 소외와 통제 불능의 이민 정책이 빚어낸 '발칸화(Balkanisation)'의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영국 사회의 심장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분석해본다.

잊힌 세대와 무너진 삶의 터전
영국 북부의 쇠락한 주택가에는 자신들이 '잊힌 세대'라고 느끼는 백인 노동계층 유권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규모 이민에 투표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무너져가는 공공 주택 단지에 살면서 "백인 특권(White Privilege)"을 누리고 있다는 훈계에 당혹감을 느낀다. 35세의 미장공 데이비드는 "기술은 발전하는데 삶은 20년 전보다 가난해진 것 같다"며 실질적인 생활 수준의 하락을 토로한다.
이민 정책의 실패와 고조되는 불만
이 지역의 불만은 인종적 편견보다는 '절차적 정당성'과 '경제적 부담'에 기피를 둔다. 자메이카 출신 참전 용사의 아들인 71세 로이는 자신의 집 창문에 '리폼 영국당(Reform UK)' 포스터를 붙여두었다. 그는 리폼당 지지자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 "나는 자메이카 혈통의 절반을 가졌다"며 반박한다. 그의 분노는 납세자의 돈으로 소형 보트를 타고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부양하는 현실에 향해 있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은 이민 정책이 지역 사회의 결속력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문화주의인가 아니면 발칸화인가
롱사이트(Longsight) 지역의 시장은 현대 영국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이곳은 다문화주의의 이상보다는 특정 집단이 고립된 '엔클레이브(Enclave)'에 가깝다. 시장에서 만난 많은 여성은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며, 보수적인 복장을 한 남성들에 의해 통제되는 모습을 보인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거주자의 60% 이상이 무슬림으로 식별되며, 이는 맨체스터 지역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이를 두고 매튜 사이드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아니라 '발칸화(Balkanisation)'라고 명명한다.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언어와 관습을 고수한 채 영국 사회와는 완전히 분리된 섬처럼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일하는 리즈완은 "백인들이 이곳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분리된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인정한다. 이는 국가 공동체의 토대인 연대감을 약화시키는 암적인 존재로 작용한다.

정치적 냉소와 대안 세력의 부상
기존 거대 양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집권했던 보수당은 혼란과 표류의 시대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노동당 역시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배신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틈을 타 리폼당과 녹색당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녹색당의 전략은 치밀하다. 생활비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는 경제 이슈를 강조하면서도, 무슬림 밀집 지역에서는 가자지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양면 전술을 구사한다. 리폼당의 맷 구드윈 후보는 보수적인 가치와 이민 통제를 원하는 우파 유권자들의 표를 흡수하고 있다. 현재 고턴 & 덴턴의 선거 양상은 과거의 관성으로 노동당을 찍는 이들과 새로운 대안을 찾는 이들 사이의 복잡한 싸움이 되고 있다.
정책적 실패가 낳은 거대한 배신
영국의 지역 불평등은 1980년대 이후 급격히 심화되었다. 정부는 금융업의 세수에 의존하며 제조업 기반의 지역 경제를 방치했다. 금융 위기 이후에는 높은 세금과 과도한 복지 지출이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정치인들은 근본적인 개혁 대신 슬로건에만 집착했다.
특히 대규모 이민은 노동력 공급이라는 명목하에 추진되었으나, 이들을 사회에 통합하거나 흡수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특정 지역에 특정 인종과 종교가 밀집되는 현상을 방치했고, 이는 정치와 문화의 발칸화로 이어졌다. 롱사이트 거리에 펄럭이는 수많은 팔레스타인 국기와 달리, 영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결론: 다시 세워야 할 국가의 원칙
고턴 & 덴턴 보궐선거는 영국이 지난 수십 년간 외면해온 질문들을 정면으로 던지고 있다. 경제적 낙후, 통제 불능의 이민, 문화적 분열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시민들에게 연대감과 Flourishing(번영)을 제공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이번 선거의 결과가 영국 정계에 어떤 경종을 울릴지 주목해야 한다. 발칸화된 정치는 결국 국가의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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